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랑 데지레 카빌라 (문단 편집) == 생애 == 베오그라드대학교를 졸업한 카빌라는 1960년대 [[콩고 내전]] 당시 암살당한 [[파트리스 루뭄바]]를 지지하던 청년단의 부사령관이었다. 콩고 내전이 결국 모부투의 승리로 최종 결착나자 동부에서 모부투 독재에 저항하는 [[게릴라]] 운동을 계속 일으켰다. 이후 [[르완다 내전]]의 영향으로 르완다와 우간다의 지원을 얻은 무장봉기를 일으켜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렸고 이로 인해 그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집권한 이후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1999년 4월로 약속했던 총선을 철회하는 등 독재정치를 펼쳤다. 투치족 출신인 그에 대항해 후투족 정권의 부룬디와 르완다가 콩고민주화집회(RCD) 반군을 지원함으로써 재발된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평화협상을 시도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또한 카빌라는 내전 상황을 오히려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한편 외국군 주둔 반대를 명분으로 유엔의 중재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카빌라는 카우보이 모자와 나이키 신발로 유명한데 그는 게릴라군 지도자에서 정치가가 된 이후 다이아몬드, 금 등을 밀수출하며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모부투에 비해서는 덜 부패했는데, 전쟁 중이라 애초에 모부투 급으로 막나가긴 힘들었고 집권 기간 중 암살당하는 등 집권 기간이 이전 정적이자 전임 지도자였던 모부투보다 길지 않았다. 우간다와 르완다의 간섭 때문에 한 때 지원을 받던 그들과 사이가 안 좋아진 로랑 데지레 카빌라는 2차 콩고 전쟁에 돌입했다. 2001년 2차 [[콩고 전쟁]]의 혼란 속에 강경파로 전쟁을 계속 주장했던 로랑 카빌라는 2001년 1월 18일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 그의 아들인 [[조제프 카빌라]](Joseph Kabila)가 그의 뒤를 이어 [[2001년]]부터 [[2019년]]까지 18년 간 장기 집권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